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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Jean Calvin 1509~1564)은 파리 북동쪽에 있는 피카르디 지방 느와용에서 제라드 꼬뱅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536년부터 제네바에서 파렐과 함께 개혁운동을 추진하면서 1538년 추방을 당하지만 3년 후인 1541년 또다시 초청을 받아 임종시인 1564년까지 제네바에서 제2의 종교개혁을 추진한다.그의 종교개혁의 유산은 지금도 제네바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닌 도시로 존속케 하였고 그의 개혁정신은 근대 산업혁명의 근간이 됐다.기독교 강요의 원명은 ‘Institutio Christianae Rili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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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2024.04.23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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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은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의 저작으로 1904년에서 1905년에 걸쳐 잡지 ‘사회과학과 사회정책학’에 연재되었다가 1920년에 책으로 발간됐다.막스 베버(1864~1920)는 20세기 사회 과학에 지대한 영향을 준 사람이다. 그리고 그 분야도 매우 광범위하다.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그의 인생 말년인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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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2024.04.0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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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0년 유족과 친지들이 파스칼의 글 묶음을 모아 이란 제목으로 펴냈다.파스칼(1623~1662)은 39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역사 세계가 지속되는 한 계속될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남긴 미완성의 작품 팡세 때문이다.미국의 심리학자 콕스(Cox)는 파스칼을 괴태와 라이프니츠에 비교할 만한 천재라고 했다. 그는 12세 때 음향론을 체계화시켰고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유클리드 기하학 1권 32명제를 스스로 해독한 천재였다12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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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2024.04.0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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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1483~1546)는 1520년 종교개혁의 3대 논문을 발표한다. ▲독일 귀족에게 드림 ▲교회의 바벨로 포로 ▲그리스도인의 자유이다.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전문 30절로 되어 있다. 1~18절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하여 19~29절은 그리스도인의 사랑에 대하여 논하고 30절은 결론 부분이다.이 논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주신 자유를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를 두 명제로 논한다. 그리스도인은 만물 위에 있는 자유로운 군주로써 아무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만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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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2024.03.2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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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의 저자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1265~1321)는 이태리 출신의 시인으로 호메로스 세익스피어 괴테와 더불어 세계 4대 시성(詩聖)으로 회자 된다.귀족 가문이었으나 가난한 가정에서 출생한 단테는 1274년 5월 그의 나이 9세 때 피렌체의 명문인 포로코 포르티 나르의 동갑나기 베아트리체를 만나 연민의 정을 갖는다. 그 후 9년 뒤에 재회한 베아트리체는 단테를 알아보고 미소를 지었다는데 단테는 그녀가 죽는 1290년까지 두 번밖에 만난 적이 없는 그녀를 영원한 여성으로 생각했다.1290년 25세의 베아트리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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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2024.03.16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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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본받아(De Imitatione Christi)』의 저자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1380~1471)는 라인강 하류의 캠펜에서 가난한 직공의 아들로 태어난 독일의 신비주의 사상가이다.공동생활형제단 부속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그는 20세가 되던 1399년 즈불레의 아그네스산에 있는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가 1414년에 부원장이 된다. 그는 이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에서 여생을 마칠 때까지 설교와 저작과 필사에 매진한다. 당시 그의 경건한 영적생활은 수도사들의 모범이었다.1472년 지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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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2024.03.14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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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가 쓴 신국론은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믿었던 로마가 야만족이었던 고트족 알라리크(Alaric)에 의해 AD 408, 409, 410년 세 번 공격을 당하면서 초토화된 후 413년부터 13년이 걸리며 기록한 불멸의 대작이다.당시 지중해 건너 히포에서 이 소식을 들은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가 이교도의 손에 의해 파괴된 것을 하나님의 뜻을 어긴 로마 시민에게 그 책임이 있음을 말하는 동시에 그 배후에는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의 섭리를 밝히려는 것이 하나님의 도성 신국론을 쓴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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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2024.03.07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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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록은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저서이다.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서 부친 파트리키우스와 모친 모니카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에서 초등교육을 받고 18세 때 카르타고 대학에서 철학과 수사학을 연구한다.그는 20세쯤 풀라톤주의에 심취했으나 만족을 얻지 못하고 마니교에 빠져 9년간 방황한다.이후 로마로 거기서 밀란으로 가 386년 여름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tolle lege tolle lege라는 소리를 듣고 로마서 13:12~13절을 읽고 회심(回心)한다. 386년이었다. 그의 나이 32세 때로 그는 당시 18세 때 얻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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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2024.03.0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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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의 달인도 혀(舌) 속에서 나온다. 중국 전국시대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달변가로 부귀영화 누리며 출세 가도를 달렸다. 반면에 은나라 때 비간(比干)은 말을 잘못하여 가슴에 화살로 맞아 7개의 구멍을 뚫게 하여 죽임을 당했다. 또 한나라 장황은 역시 탕확(湯鑊)으로 생을 마감했다. 처세의 달인도 혀(舌) 속에서 나온다는 말 잊지 말기를 기고한다. 요즘 정치권은 한치 앞을 점칠 수 없다. 당정 극한 갈등, 순탄한 국정을 위해 속히 봉합되기를 바란다. 윤-한 충돌 여권 내 충격파에 용산은 한동훈과 회동을 추진해 파국을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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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진 기자
2024.01.24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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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자 칼빈(John Calvin)은 세계가 신적인 절대 질서 아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신율을 통하여 세상은 통치된다고 생각했다. 기독교가 뿌리요 그 열매라고 생각했던 중세기 군주들은 왕명을 신율로 내세웠다. 하지만 제네바의 개혁자 칼빈의 사상이 퍼진 곳에서는 그런 독재적 발상은 저항을 받아야 했다.청교도들은 타운미팅(town meeting) 즉 마을회의를 시작하면서 이것이 풀뿌리 민주주의가 되게 하였다. 따라서 영국식 민주주의도 미국식 민주주의도 칼빈의 후예들로 인한 유산이었다. 칼빈주의의 영향은 정치적 측면에서 그 열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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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2024.01.1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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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교회의 병리적 현상 가운데 제 일번인 이기주의의 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성경의 실례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이다.온갖 은총과 축복을 받았는데도 열매 없는 영적 이스라엘의 모습을 이 말씀에서 보게 된다. 이러한 교회의 집단적 이기주의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축복을 곡해한 신앙의 유산 때문이었다.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축복은 프리즘(prism)의 축복이었다. ‘너로 인하여(through)’ 만민에게 펼쳐질 나눔의 축복이었다. 너를 위하여(for) 이것이 축복의 사유화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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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2024.01.1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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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근종태(始勤終怠) 인지상정(人之常情) 종근여시(終勤如始)하라”는 이 말은 한명회가 남긴 마지막 유언이다.처음에는 부지런하다, 나중에는 게을러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니 끝까지 삼가고 조심하기를 처음과 같이하라는 말이다.한명회는 단종 세조 예종 성종조에서 33년을 조정에 있으면서 1466년부터 세 번이나 정승에 올랐고 정난靖難 좌익左翼 익대翊載 좌리佐理 등 네 번이나 1등 공신에 올랐던 사람으로 대하 드라마에 가장 많이 회자 되는 인물이다.1415년에 태어나 1487년 72세로 하세(下世)한 한명회는 일찍이 고아가 되어 작은 할아버지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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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2024.01.06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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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다. 교회에서는 매년 절기로서 행사준비에 바쁘고 사회에서는 성탄을 상품화해서 일 년 중 최고의 호황을 꿈꾸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참된 성탄의 의미는 퇴색하고 있다.이는 성탄의 세속화 때문이기도 하다. 참된 성탄의 의미는 성경 속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목회 현장에 새로운 성탄절의 의미를 실천하여 교회 갱신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마태는 예수님의 탄생을 구약의 성취라는 유대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했다. 반면에 마가는 섬김과 대속이라는 십자가 사건과 연결시켰다. 여기에 비해 누가는 마태와 달리 예수님을 온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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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2023.12.2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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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들이 쓰는 달력은 1582년 교황 그레고리 13세(Gregorius PP. XIII)가 수정한 그레고리력(Gregorian Calendar)이다.당시까지 쓰던 달력은 로마의 영웅으로 종신 독재관이 되어 로마의 원로원에 의해 BC44년 3월 5일 23군데나 칼을 맞고 폼페이우스 입상 아래 쓰러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만든 율리우스력(Julian calendar)이었다.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당시 로마가 사용하던 달력의 10개월을 12개월로 바꾸었다. 그는 1년을 365.25일로 삼았다.카이사르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는 달력의 중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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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2023.12.18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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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7일 하마스(Hamas)의 기습공격으로 발발한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참혹한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의 골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일찍이 아랍이 오스만제국의 통치 아래 있던 시절 이집트 주재 영국인 고등판무관 맥마흔(MCMahon.A.H)은 오스만제국 치하의 아랍인들에게 독립을 약속한다. 소위 맥마흔 선언이었다. 때는 1915년이었다.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국제연맹은 영국에게 팔레스타인을 통치할 권한을 부여했는데 이때 시온주의자들인 유대인들에게 가나안 즉 약속의 땅이라는 야레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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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2023.12.1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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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불조심 강조의 달이다. 가을철은 건조한 날씨로 화재가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기 때문에 화재로 인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전국의 소방관서에서는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여 추진 중이다. 그 가운데 하나로 ‘우리 집 안전맵(map) 그리기’를 시행하고 있다.다수의 국민이 공동주택에서 생활하는 요즘, 아파트 화재는 다른 화재와는 다르게 인근 세대로 쉽게 확대되고 연기가 급속히 확산돼 많은 인명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우리 집의 피난시설 활용과 대피계획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졌으며, 어떠한 피난시설이 설치되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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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재
2023.11.22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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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화폐역사는 우리역사에 비하여 그리 길지 않다고려말 원나라의 종이 화폐 저화(楮貨)를 본떠서 화폐 유통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조선 개국과 함께 태종도 저화를 만들었으나 종이 질이 좋지 않은 데다 습기에 취약하여 사용이 중단되었다.이후 1423년(세종) 조선통보(朝鮮通寶)라는 동전이 만들어져 사용되었는데, 당시 대다수 사람들은 쌀과 무명 삼베로 물물교환을 하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동전이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돈을 도외시했다.부자들은 집에 큰 창고를 짓고 쌀을 수천 석씩 쌓아 놓았고 무명을 수백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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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2023.11.19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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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진실 되지 않다는 뜻이다(信言不美 美言不信). 야당의 전·현 대표들은 허겁지겁 불안해하며 누구를 탓하며 한 장관을 두고 무식하게 쌍욕을 해가며 감정을 분노하듯 털어놨다.헤밍웨이가 그랬단다. 동사와 명사만으로 글을 쓰고 싶었다. 여기에 해당하는 문장이 있으니 그대 사랑한다.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 없는 조심을 담은 한 마디다. 떨리는 음성의 어눌한 고백일지언정, 그 떨림과 어눌함마저도 진심이다. 이런 그의 말은 조리 있고 정연하게 말한다면 그 사람의 진심이 느껴지겠는가?자신감이 없을 때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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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진 기자
2023.11.1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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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코리아드림뉴스 최생금 기자입니다.11월 7일 오후 휴식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니 코리아드림뉴스 칼럼니스트인 우천 최영록 선배로부터 전화가 온 것입니다. 중요한 일이 아니면 카톡 문자로 연락을 하실 것인데 하면서 전화를 받아보니 예상대로 슬픔의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2002년은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가 히딩크 감독의 용병술로 ‘월드컵 4강 신화’가 만들어진 해였으며,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해였습니다. 제게는 2002년은 남천식(南天式) 속기학을 창안한 남상천 선생님이 기억됩니다.2002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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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생금 기자
2023.11.07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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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으로 빚어졌다고 지금껏 회자 되는 기축옥사인 정여립(鄭汝立) 역모사건은 조선을 멸망시킨 서인들에 의해서 조작된 사건이었다.이 사건이 조작인 것은 정여립이 역모를 꾀했다는 증거가 단 한 글자도 없다는 것이다.또한, 대동계(大同契)는 관의 요청에 의해서 만들어진 단체였기에 역모란 있을 수 없는 단체였다. 저들은 왜구가 침입했을 때 관군과 힘을 합쳐 지역을 지킨 향토 예비군 같은 지역 유지들의 모임이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정여립이 전라도에서 활동했는데 역모 고발은 황해도 관찰사가 했다는 것이다.당시 정여립 역모사건에는 길삼봉(吉三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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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2023.11.07 10:49